“스턴트맨은 맞아도 안 아픈 사람이라고요?”

이글거리는 한여름 태양만큼이나 강렬한 기합소리. 지난 6월 1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마을 입구의 서울액션스쿨에서는 50여 명의 교육생들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 크게 걸린 힘찬 필치의 ‘무(武)’자 아래 펼쳐 보이는 일사불란한 몸동작은 올해 초 폭발적 인기를 모았던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익숙하게 보던 모습이었다.

한 순간 모든 교육생들이 동작을 멈추더니 일제히 허리를 굽히고 “안녕하십니까”를 외쳤다. 도장에 성큼성큼 들어서던 축구복 차림의 한 남자가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에 답했다. 175cm의 키에 탄탄한 근육, 결연한 눈빛과 절도 있는 동작에서 ‘무인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김민수(42) 무술감독이었다.

 김민수 무술감독이 훈련을 지휘하며 미소짓고 있다.
▲  김민수 무술감독이 훈련을 지휘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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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서울액션스쿨의 창단 멤버인 김 감독은 23년 경력의 스턴트맨이기도하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 <로드 넘버원> <개와 늑대의 시간> <뉴하트>,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세븐데이즈> <식객> 등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했고 영화 <바람의 파이터>, 드라마 <짝패> 등에서는 스턴트맨으로 액션연기를 펼쳤다.

“처음엔 연기자의 꿈을 안고 시작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쳐보니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지금은 카메라 뒤에서 감독하는 일이 더 좋습니다.” 

요즘은 무술감독이 본업이고, 연기는 주변의 부탁이 있을 때 가끔 참여하는 정도. 지난 5월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 첫 회에서는 주인공 독고진의 액션영화 기자회견 장면에 제작진의 한 명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감독이 되니 스턴트맨 시절에 비해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현장에서 직접 뛸 때는 뭐, 나 혼자 다치면 되니까 아무 상관없는데, 책임자로 일하다 보니 이게 더 불안해지는 거죠. 아, 저 놈 다치면 안 되는데… 더 신경 쓰게 되고, 심적인 부담감이 상당히 크더라고요.”

스턴트맨으로 한창 일하던 시절, 동료가 사고로 숨지는 모습도 본 경험이 있어 위험한 장면을 촬영할 때는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다행히 감독으로 일하는 동안 심각한 사고를 겪진 않았지만 스턴트맨이 이런저런 부상을 입는 일은 늘 일어난다.

“감독으로서 최고의 그림을 만들어야 하니까 스턴트맨 후배들에게 ‘너네 한 번 해 봐. 할 수 있어?’라고 물으면서도 슛 들어가면 내심 마음을 졸이는 거죠.”

 김민수 감독이 무술감독으로 참여한 영화<세븐데이즈>(위), 드라마<로드 넘버원>(아래).
▲  김민수 감독이 무술감독으로 참여한 영화<세븐데이즈>(위), 드라마<로드 넘버원>(아래).
ⓒ 영화사 윤앤준·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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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라임 덕분에 완전히 떴어요”

김 감독은 지금까지 수많은 흥행작들의 액션을 감독했다. 그러나 스턴트맨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화제가 되기 전까지 그를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스턴트를 시작했을 땐 부모님이 심하게 반대해 4, 5년간은 집에 출입조차 할 수 없었다. 그 후에도 계속 시큰둥했던 가족들이 그를 인정한 것 역시 <시크릿 가든>이 계기였다. 드라마에서 스턴트맨의 세계가 멋지게 그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인식도 좋아진 것이다. 스턴트우먼으로 등장한 길라임(하지원 분)이 큰 인기를 모으면서 제작 현장에서 다른 스턴트우먼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다.

“그냥 평범한 스턴트우먼들도 현장에 데려가면 감독이랑 스태프들이 다들 ‘길라임, 길라임’하면서 위해줘요. (웃음) 그동안은 스턴트우먼에 대한 인식이 사실 좋지 않았거든요. ‘뭐 여자들이 할 게 없어서 저런 걸 해’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멋있다고들 해요. 길라임 때문에 완전히 뜬 거죠.” 

덕분에 서울액션스쿨의 교육생 50여 명 중 2, 3명에 불과했던 여성 교육생이 지금은 8명으로 늘었다. <시크릿 가든>이 끝난 직후엔 서울액션스쿨의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관심이 쏠렸고 지난 3월 교육생 모집에는 예년의 3, 4배 정도 여성 지망생들이 몰렸다. 촬영장에서 무술감독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다고 한다.

 스턴트우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드라마<시크릿가든>.
▲  스턴트우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드라마<시크릿가든>.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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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모니터 앞에 무술감독이 전혀 앉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의자에 앉을 수 있고, ‘다시 한 번 가자’라는 말도 할 수 있죠. 그러면 스턴트하는 친구들도 같이 대우가 올라가는 거죠. 그림에 대한 것도 감독, 제작자와 같이 앉아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된 거죠.”

그래도 김 감독은 촬영장에서 속이 상할 때가 많다. ‘스턴트맨은 맞아도 안 아픈 사람’이라는 편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5층에서 떨어졌는데도 ‘쟤네는 스턴트맨이야, 만날 저것만 하는 애들이니 괜찮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배우들 중에도 ‘저 사람 스턴트맨이야, 그냥 차!’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스턴트맨도 사람이라 똑같이 아픈데, 속이 상하는 거죠.”

사실 액션배우들은 괜찮지 않아도 늘 “괜찮습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시크릿 가든>에서 길라임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현장에서 아프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기 때문이고, 배우들 스스로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김 감독 자신도 충분히 경험한 일이다. <시크릿 가든>에 나온 관련 장면들도 95%는 현실과 같다고 한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었어요. 모니터했을 때 뭔가 이상하게 떨어져서 ‘괜찮니’했더니 ‘네 괜찮습니다’하곤 말을 못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어깨가 부러졌는데 그걸 다섯 번은 더 했더라고요. 그러고 바로 병원 가서 수술을 했어요.”

세계 최고수준의 한국 액션 배우로 산다는 것

 김민수 감독이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김민수 감독이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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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마음을 졸이는 작업이지만 김 감독은 액션배우로 사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고, 어려운 장면을 해냈을 때의 쾌감, 희열이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이란다. 열심히 하는 만큼 돈도 벌지만, 일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무술감독으로서 그는 한국의 액션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보였다. 자금력에 차이가 있어 특수효과 등에서는 할리우드 등 해외액션물에 뒤지지만, 주먹과 발로 하는 연기 자체는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한국 액션의 세계화를 위해 ‘변화와 발전’을 고민한다고 밝혔다.

“영화 <아저씨>에 나오는 액션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그땐 안 먹혔던 거예요. 묻혀 있던 액션이었는데 <아저씨>가 히트를 치니 모든 액션이 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죠. 예전에는 마구잡이로 치고 패는 ‘개싸움’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화려하게 손기술을 쓰는 <아저씨> 액션에 열광해요. 그래서 새로운 액션의 포인트를 찾기 위해서 외국영화도 연구하고 호신술부터 와이어액션까지 여러 장르를 융합해서 실험도 합니다.”

새로운 액션을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그의 최종 목표는 직접 액션배우를 길러 자체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무술과 스턴트 실력을 갖춘 세계적 스타를 길러내고, 액션 중심의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후배들이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한다. 오늘도 후배들이 다칠까 노심초사하며 제작 현장을 지키는 김민수 무술감독. 언젠가는 ‘세계 속의 액션 한류’를 선도하는 제작자로 그를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